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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해대는

대략 난감한 사태 -_-

강대국 중심 외교…지구촌 지역 전문가가 없다

[아프간 인질사태가 남긴 과제] 이슬람권 이해 전환점 계기

아프간 아랍어 안쓰는데
사태 초기 아랍어교수 찾아
현지 네트워크 없어 고전

한국인 인질 사태가 벌어지자, 정부는 9일 뒤에야 이른바 ‘전문가’를 보냈다. 아랍어 교수였다. 하지만 아프간에선 아랍어가 통용되지 않는다. 파슈툰어와 다리어가 쓰인다. 정부는 얼마 뒤 다른 전문가를 찾느라 허둥댔다. 현지에 한 명의 기자도 파견하지 못하고 사건의 종말을 봐야 했던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번 인질사태는 주요국 이외 지역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라마단 등 이슬람권에 대한 이해와 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은 인질 석방에 크게 기여했다. 그만큼 특정 지역에 대한 정부·학계·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의 중요성은 다시 확인됐다.

하지만 대외정책의 최일선인 외교부만 봐도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중동전문가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탈레반과의 협상을 꺼리는 아프간 정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고 협상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기도 힘들었다. 아프리카·중남미 등 다른 제3세계 전문가도 찾기 어렵다. 아프리카의 한 한국 대사는 “아프리카 국가로 배치될까봐 프랑스어 구사 능력을 드러내길 꺼린다”고 털어놨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주요국을 빼면 각 지역 전문가가 없기는 학계와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학계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들이 즐비하지만, 국립대학교에는 아랍어과가 개설된 곳이 한 곳도 없다. 이른바 제3세계 전문가는 일자리를 얻기도, 학술진흥재단 등의 지원도 받기 어려워 연구 자체를 꺼린다.

언론계도 아랍권 등 특수지역의 현지어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없어, 서방 언론에 거의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나 독일 관련 기사조차 영·미 언론 보도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극소수 강대국 중심의 사회적 풍토 속에서 정책적 뒷받침까지 없다 보니까 기타 지역의 전문가를 키우지 못한 것이다.

김계동 국제지역연구소장은 “우리 사회는 일부 지역을 빼면 지역전문가가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적 수준이 제3세계까지 신경쓸 수준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대학 등에서 전문가를 키워낼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동정치 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중동이나 아프간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소수의 전문가조차 활용하지 못해 초기 대응에 혼선을 빚었다”며 “고시 채용 대신 각 지역별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외교관으로 선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비슷한 사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