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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tibet

2박 3일 카일라스 코라를 마치며


우리 민족에게 영산 백두산이 있듯이 티베트인들에게 최고의 성산은 히말라야의 비경 카일라스(수미산)이다. 성산 카일라스는 현자(賢者)들에 의해서 지구 에너지의 중심축이며 우주의식과 합일되는 일곱 번째의 에너지 센터로 신성시되고 있다. 불교도들은 이 산을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여 '수메루(Sumeru)' 즉 수미산이라고 불렸다. 성산 카일라스를 한 바퀴 돌면 55km이다. 걸어서 3일 걸리는 코스를 티베트의 불자들은 오체투지의 예배 법으로 벌레 기어가듯 순례하여 20~30일 만에 성산 한 바퀴를 순례한다. 성산을 한 번 순례하면 금생(今生)의 죄가 소멸되고, 세 번 순례하면 삼생(三生)의 죄가 소멸되고, 108번 순례하면 일체 업 장이 소멸되어 성불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티베트인들은 성산을 순례하는 것을 일평생 소원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성산 카일라스 코라(수미산 순례)를 위한 첫째 날이 밝았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최소한으로 준비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고도 4600m가 넘는 지대에 위치한 다르첸이란 마을에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뎌 1시간쯤 걸었을 무렵, 타보체에 도착한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새로운 타보체를 세우고 축제를 펼친다는 이 곳에서는 티베트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룽타(오색깃발)가 수도 없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 아래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리고 또다시 순례를 시작한다. 추운 날씨 탓인지 생각보다 순례 객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는데, 두어 시간 남짓 묵상하며 걸음을 내딛다가 야크(티베트 등지의 고산지대에서 사는 털이 긴 소)떼에 한 가득 짐을 싣고 가는 순례 객 일가(一家)를 만나 차를 얻어 마시며 차가워진 몸을 녹일 수 있었다. 몇 개월 되지 않아 보이는 갓난 아기부터 나이 지긋하신 노인네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순례를 하는 모습에서 또 한번 그들의 불심에 감탄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신령스러운 카일라스의 서쪽 면을 보며 힘을 내기 시작한다. 열심히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디라푹 곰파(Dirapuk Gompa, 카일라스 북쪽에 있는 토굴)에 들어서서 불전에 인사 드리고 스님들께 인사 드리며 하룻밤 묵어가길 부탁 드리니 흔쾌히 승낙해 주시며 따뜻한 차에 짬파(티베트인들의 주식, 미숫가루와 비슷한데 버터 차를 부어가며 반죽해 먹는다)까지 대접해 주신다. 주린 배를 채우고, 밖에 나가 카일라스의 북면을 마주하니 불자로써 느끼는 경외감이 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비로움, 따뜻함까지 온몸으로 느껴진다. 9시가 다 되어 해가 저물고 강한 바람과 추위가 엄습해 오기 시작할 때쯤 잠자리에 누워 내일을 위한 깊은 잠에 든다.



이틑 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순례 일정 중 가장 힘들다는 돌마 라(Drolma la, 해발 약5600m)를 향한다. 해발 5000m인 디라푹 곰파에서 5600m인 돌마 라 까지는 계속된 오르막이다. 티베트인 순례 객들과 함께 옴 마니 반메훔을 수도 없이 되뇌며, 추위와 싸우며 돌마 라를 향해 한발 한발을 옮겨가다 두어 시간을 오르니 수도 없이 펼쳐진 룽타와 그 아래 순례 객들이 벗어 놓고 간 옷들, 한줌씩 잘라 놓고 간 머리카락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날의 과거를 씻기 위한 것이라 하여 나도 그들처럼 머리카락 한 줌을 잘라내어 한 곳에 놓아두고 그들과 함께 성산을 향해 절하고 명상에 잠긴다.

돌마 라를 지나고 나니 계속된 내리막이 펼쳐진다. 눈밭을 헤치며 기분 좋게 내리막을 내려가다 보니 왼편에 작은 에메랄드 호수(Yokmo tso)가 보인다. 성산 카일라스를 옆에 두고 에메랄드 빛을 자랑하는 호수를 보니 그 아름다운 빛깔이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계곡을 따라 평탄한 길들이 끝없이 늘어져 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너 시간을 걸어가다 보니 오늘 하루 묵어갈 또 하나의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에는 많은 순례 객들과 여행자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도 마련되어 있었지만 우연히 만난 티베트 스님을 따라 위에 자리잡은 사원, 주툴푹 곰파(Zutrul puk Gompa)에서 하룻밤 신세 질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어느 절에 계신다는 그 스님은 스무 번 이상 성산을 순례하며 발목에 상처까지 입으셨다고 한다. 그 스님을 따라 들어간 절엔 어찌된 일인지 스님께서는 안 계시고 한 일가족이 절을 지키고 있다. 전날 디라푹 사원에서 얻어 온 짬파를 비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또 하루를 마친다.
순례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부처님 전에 인사 드리고 절을 지키는 가족들께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 남은 순례 길에 나선다. 험하지 않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몇 차례씩 오르내리며 세시간쯤 걷다 보니 작은 마을이 보인다. 순례의 마지막 길이란 생각을 하니 뿌듯한 마음도 들었지만, 성산 카일라스의 뒷모습을 돌아보니 자꾸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작은 마을에서 차를 얻어 마시며 허기를 채우고 평탄한 길을 한 시간 남짓 걸으니 처음 출발한 마을 다르첸에 다다른다. 여기저기 벗겨진 발과 부르튼 입술을 보니 피식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성산 카일라스 코라를 108번 하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2박 3일간의 코라를 통해 어느 만큼 얻었다기 보다는 그 시간 동안 나를 돌아보고, 많은 생각들을 가질 수 있었기에 무엇보다 즐거웠다. 무사히 코라를 마칠 수 있게 보살펴 주신 부처님의 가피에 감사 드리며 글을 마친다.